수도회 주보성인-바뇌의 성모

벨기에 동부에 있는 리에주 교구 소속의 성모 마리아 발현 성지다.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까지 이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 마리에뜨에게 여덟 번 발현하여 자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한 성지가 조성되어 있는 바뇌는, 프랑스의 루르드와 포르투칼의 파티마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모 발현지 중 하나이다.



Our Lady of Banneux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 바뇌에 사는 마리에트(12세)에게 8번 나타나셨다. 가난을 내세우시는 성모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 위주의 사상에서 하느님의 신앙을 져버리고 있는 위기를 일깨워 주셨다. 당신을 철저히 신뢰할것을 바라시며 루르드처럼 샘터를 지적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전구하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치유와 회개의 기적을 일으키는 루베네의 아르덴 고원의 바뇌도 1949년 성지로 공식 발표되었다. 파티마나 루르드의 성모 발현을 본 어린이들은 모두 수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뇌의 성모님을 뵈온 마리에뜨는 결혼하여 가정 주부가 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마리에뜨는 어느 가정보다도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는 가정주부라는 점에 있어서 오늘의 시대적인 특징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마리에뜨는 지금도 바뇌의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그 곳 한 식당에서 헌신적으로 봉사 생활을 하고 있다.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바뇌 성으로 피난해 있던 주민들이 무사하게 된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성모에게 봉헌한 후 '우리의 모후 바뇌'라고 불리어 졌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19세기에 건축된 아담한 성당이 있었고, 성당 중심으로 가난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성당에서 약 1km 내려와 전나무로 무성한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왼쪽에 베코베지몽씨의 초라한 집이 있었다. 아무런 꾸밈도 없는 뜰이 있고 주위가 자연 그대로 펼쳐있는 산골 집이었다. 베코씨 자녀들 중 장녀인 마리에뜨(Mariette)는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 해의 전례상 성금요일이었고 동시에 성모영보 축일이었다. 마리에뜨는 종교적 의식이나 사회적인 인습이 없는 황량한 숲 주위에서 자라났다. 야생화처럼 자라난 마리에뜨는 육체적으로 건강하였지만 마음의 양식은 부족하였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마음은 단순하고 겸손하였다.

 마리에뜨의 일과는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책이나 신문도 읽지 않았고 오락도 즐길 줄 몰랐다. 한가하고 조용한 때는 집 밖으로 뛰어나가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겉꾸밈이나 남의 눈에 두드러짐이 없는 순진하고 솔직 담백한 마리에뜨였다.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동생들의 놀이에 응하여 주는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 두뇌 발달은 다른 아이와 뒤떨어졌지만 침착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것은 부모에게 배웠다. 성당의 교리반에 나가면서도 결석하기를 잘 하였고 주일 미사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교리 지식은 거의 없었고 첫 영성체를 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에뜨에게 너무나 귀하시고 놀라운 분이 찾아 왔던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다.”

“기도 많이 하거라.”

“나는 작은 성당을 원한다.”

“이 샘은 모든 나라를 위한 것이다. 이 샘은 모든 나라들, 그리고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나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왔다.”

“나를 믿어라. 나는 너희를 믿겠노라.”

“물에 손을 담그렴. 이 샘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너를 위해 기도하마...안녕...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안녕히" 

 

■ 바뇌라는 시골마을

  바뇌는 벨기에의 고원지대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바뇌의 주민들은 지금도 가난하지만 옛날에도 가난하였다. 산림지대이기도 한 이 산골 촌락이 1차대전 이후부터 '우리의 모후 바뇌'라고 불리어 졌다. 바뇌 근처 저지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전쟁이 터지자 산으로 피난하였고, 이 산골에서 전쟁 중 살아 남는다면 이 마을을 '우리의 모후 바뇌(Notre-Dame Banneux)'라고 부르겠다는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바뇌에서 2km 밖에 되지 않는 이웃 마을 루베네는 군인들에 의해 젯더미가 되었지만 이 마을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1933년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발현 당시 바뇌의 주민은 325명 뿐이었다. 그들은 평화롭고 부지런한 산골 생활을 하였는데 한 마디로 전형적인 시골 생활이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19세기에 건축된 아담한 성당이 있었고, 성당 중심으로 가난한 집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었다. 그 성당에서 약 1km 내려와 전나무로 무성한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왼쪽에 베코베지몽씨의 초라한 집이 있었다. 아무런 꾸밈도 없는 뜰이 있고 주위가 자연 그대로 펼쳐있는 산골 집이었다. 단도직입적인 말투와 투박한 성격을 가진 가장은 늘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갔고, 신문이나 종교 문제나 더더욱 오락에까지도 관심이 없었다. 한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성실과 정직과 용기만 있을 뿐 초라한 촌부에 불과했다. 부드럽거나 친절한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지만 겸손한 면은 있었다.

  ■ 마리에뜨

  베코씨 자녀들 중 장녀인 마리에뜨(Mariette)는 1921년 3월 25일에 태어났다. 이 날은 그해의 전례상 성 금요일이었고 동시에 성모영보 축일이었다. 마리에뜨는 종교적 의식이나 사회적인 인습이 없는 황량한 숲 주위에서 자라났다. 야생화처럼 자라난 마리에뜨는 육체적으로 건강하였지만 마음의 양식은 부족하였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마음은 단순하고 겸손하였다. 마리에뜨의 일과는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책이나 신문도 읽지않았고 오락도 즐길줄 몰랐다. 한가하고 조용한 때는 집 밖으로 뛰어나가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겉꾸밈이나 남의 눈에 두드러짐이 없는 순진하고 솔직 담백한 마리에뜨였다. 학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동생들의 놀이에 응하여 주는 유순한 성격을 가졌다. 두뇌 발달은 다른 아이와 뒤떨어졌지만 침착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것은 부모에게 배웠다. 성당의 교리반에 나가면서도 결석하기를 잘 하였고 주일 미사도 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교리 지식은 거의 없었고 첫영성채를 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에뜨에게 너무나 귀하시고 놀라운 분이 찾아 왔던 것이다.  

 

○ 첫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5일 주일

주위가 깜깜하고 추웠던 밤 7시경, 마리에뜨는 남동생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갑자기 광채가 나타나더니 정원에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부인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갸우뚱하면서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다. 너무 멋진 부인이 나타났다고 어머니께 말했지만 어머니는 허튼소리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감격한 마리에뜨는 성모 마리아이심을 느기고는 모든 행동이 급작스럽게 변했다. 교리반에도 열심히 나갔다. 오로지 성모님 마음에 들기를 원하였다. 첫번째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한마디의 말씀도 주시지 않으셨다. 마리에뜨에게 미소만 지으셨다. 

 

○ 두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8일 수요일 저녁 7시경이었다. 영하 12도가 되는 강추위에서도 마리에드는 집 근처 큰 길 옆, 3일 전에 성모님을 보았다고 하던 그 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성모님께서 하늘 저 멀리에서 점점 가까이 오시면서 전나무 사이를 통하여 내려오셨다. 마리에뜨 앞 약 1m50cm 정면에서 계셨다. 마리에뜨는 미소짓는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뒷걸을질로 가시는 성모님을 따라가다가 성모님께서 멈추시자 무릎을 꿇었다. 작은 샘이 있는 길 옆에 서신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네 손을 물에 담가라" "이 샘은 나를 위하여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는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 세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19일 목요일

 저녁 7시쯤에 매우 나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마리에뜨는 로사리오 기도를 하였다.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마리에뜨가 '아름다운 부인이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하고 여쭈었다.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다" 이렇게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밝히셨다. 마리에뜨가 묻는 말에 성모님께서 대답하셨다. "이 샘물은 모든 백성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 성모님께서 떠나시면서 마리에뜨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잘 있거라. 다시 볼 때까지"   

 

○ 네번째 나타나심-1933년 1월 20일 금요일

 마리에뜨는 피곤한 몸은 일으켜 저녁 7시 45분경에 정원으로 나갔다.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 또 오셨다.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여쭙는 마리에뜨에게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작은 성당을 하나 원한단다" 

 

○ 다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1일 토요일

 이 날은 성교회가 성모님께서 루르드에 발현하신지 75주년 기념하는 행사를 거행하였지만 산골 소녀 마리에뜨는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밤7시경 마리에뜨는 밖에 나가 로사리오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성모님께서는 마리에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여섯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15일 수요일

 저녁 7시에 마리에뜨는 다른 때와 같이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본당 신부가 증거를 요청한다고 말씀 드리니까 성모님께서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다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는 떠나셨다. "나를 믿어라. 나도 너희를 믿겠다."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일곱번째 나타나심-1933년 2월 20일 월요일

 이날 밤에는 눈바람이 불었다. 마리에뜨는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기도 많이 하여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마지막 나타나심-1933년 3월 2일 목요일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마리에뜨에게 슬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천주의 모친이며, 구세주의 어머니이다." "기도 많이 하여라"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잘 있거라(Adieu)"하시면서 마리에뜨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성호를 그어 축복을 하신 다음 떠나가셨다. 

바뇌의 성모님의 가르침

바뇌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무엇을 가르치시는가? 마리아는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 발현하셨다. 8번 발현하신 중에 5섯번을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므로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셨다. 또한 작은 성당을 원한다고 하심으로 성모님은 예수님을 중심해서 말씀하심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이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가르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 가난한 이들을 업신 여기지 않도록 하셨다.

  마리아 베코는 가난한 집의 11남매 중 맏이이며 지금도 수도자나 동정녀가 아닌 많은 자녀를 둔 어머니이다. 그는 여러가지 고통 중에도 순례객 들을 위하여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바뇌의 성모님은 마리아 벡호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어머니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시사하는 바가 크다.